저도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결혼하면 자연스레 임신이 될 줄 알았습니다. 2년이 지나도 아이가 오지 않아 난임병원을다녔고 인공수정부터 시작해 시험관 신선 3회, 냉동 5회만에 지금의 아이를 만날수 있었습니다. 처음 김나영 원장님을 만나러 가는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미 6번의 시험관 시술을 실패하고 2번의 유산을 겪은 후 태아염색체 결과서를 들고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난임카페를 통해 저와 비슷했던 사례를 가진 분의 담담하면서도 솔직한글에 공감이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깜깜한 상황에서 무작정 만나러 가고 싶었습니다. 용인에 살고 있어 마을버스, 광역버스, 지하철을 타고 왕복 세시간 반이 걸려 병원을 칮아갔습니다. 가는 길이 오래걸려가는 도중 내가 여기를 다닐수 있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동안의 병원 기록들을 가지고 예진을 한 후 김나영 원장님을 만나던 날. 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동안 시술별로 사용했던 약제와 결과 등을 한 페이지에 적어서 갔는데 내용을 보시곤 제 나이대와 난소기능 상태에서는 임신이 됐어야 했다며 사용했던 약제들의 아쉬움과 앞으로 진행하게 된다면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적극적인 제안. 무엇보다 안된다고 계속할수 없다고 방법을 찾아 임신해야한다던 말씀에 눈물이 났습니다. 이전 병원에 상급냉동배아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걸 버리기에는 아쉽다, 6일배양은 과감히 포기하고 3일배양을 하루 키워보며 진행속도 등을 체크하며 이전병원에서다시 해보는것도 좋겠다는 정말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해주시는 말씀에 신뢰가 갔습니다. 그동안 저는 병원에서도 그랬고 정자의 중요성을 몰랐습니다. 수정만 시키면 됐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고 그 많은 정자 중에 하나 고르면 되겠지라고도 여겼습니다. 저는 3일까지는 세포분열 속도가 좋다가 이후부터는 속도가 떨어져 항상 6일배양으로 나왔습니다. 정자가 후기 세포분열속도에도 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남편도 꼭 관리를 해줘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제가 먹을 영양제도꼼꼼하게 설계해주셨고 저는 이전 타병원에 보관되어 있는 냉동은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그때 만들어진 배아들로 유산과 수술들을 경험했기에 남편과 같이 몸을 만들고 건강하게 아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난임병원을 떠나 어떤 병원을 가도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진심으로 의료진에게 상담을 받은 기억이 없었은데 김나영 선생님과 오랜 상담을 받은 후 다시 할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유산후 소파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궁상태를 볼겸 진단내시경을 진행했고 태반잔여물이 남아있어 자궁경을 한 후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는 날. 그동안 너무 많은 난자들을 채취해왔다는 원장님의말씀에 약제를 최소화해서 퀄리티를 높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해도 20여개의 난자를 채취했고 미세수정 후 수정된 13개 모두 냉동되었습니다. 확실히 약물을 적게 사용해서인지 컨디션은 이전 경험들보다 좋았습니다. 피검사를 통해 신선이식보다 냉동으로 진행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소견으로 냉동 5차를 진행했고 에이치아이병원에서 첫 이식만에 임신이되었습니다. 이후 안정적인 피검수치와 아기집을 보고 기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출혈과 심한 복통으로 근처 대학병원응급실을 찾았고 이름도 생소한 복합임신을 진단받았습니다. 임신 6주경었습니다. 한 아이는 자궁에 잘 자리를 잡고 크고있었도 다른 한 아이가 우측 나팔관에 자리잡았다는 설명을 듣고 응급수술을 해야하며 지금 유지하고 있는 아스피린과 호르몬제를 모두 중단해야한다는 얘기에 주말임에도 에이치아이 병원에서 연결을 해주셔서 김나영 원장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주말 2박3일을 대학병원에서 입원 후 다음날 월요일에 택시를 타고 에이치아이병원으로 갔고 바로 복강경수술을 해주며 투여중인 약물들도 꼼꼼히 챙겨 유지시켜주었습니다. 아마 그때 대학병원에서 그대로 수술을 했다면 지금의 아이는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김나영 원장님이 힘겹게 힘겹게 지금의 아이를 만나게 해주셨어요. 임신 초기의 이벤트때문인지 이후에는 너무나 건강하게 임신기간을 보냈고 39주 5일. 3.67kg의 건강한 여아를 출산했습니다. 출산하자마자 김나영 원장님이 생각이 나서 바로 이메일로 감사인사를 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축하선물도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저는 행복하게만 육아를 할 것 같았는데 조리원 입소 후 다음날 아기의 목에 혹이 생긴것이 보였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 온갖 검사를 다 한 후 세열낭종이라는 처음 들어본 병명을 진단받습니다. 서울대병원 본원으로 이원이 결정난후 혹의 위치와 크기때문에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을 합니다. 몇차례의 시술 끝에 결국 제거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3주를 니큐에서 보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나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고 퇴원을 했고 이후 3개월 후, 1년 후 각각 초음파를 보고 문제가 없으면종료하기로 했습니다. 니큐에 입원시킨 후 매일 30분의 면회시간으로 아기를 만나러 다니던 날. 참 많은 부모들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부모가 되었는데 아픈 아기들을 보니 그동안 시험관 시술이며 뭐며 힘들었던 기억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아기가 아픈것보다 내가 아픈데 더 낫다는 생각에 그동안 시험관시술을 하며 서러웠던 기억들이 무의미해지고 아기만 건강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퇴원한 아기와 고군분투하며 행복한 육아중입니다. 4.7키로로 부쩍 무거워진 아기는 아팠던 아기가 맞나 싶게 너무나도 건강해보입니다. 아기에게도 생후 큰 이벤트가 있었지만 이 아기가 우리 부부에게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기을 만난 매 순간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김나영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 아기를 못만났을 거에요. 엄마 만들어주셔서 우리 아기 만나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난임부부들의 희망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자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부디 건강 헤치지 않으시길 기도할게요.